미국간호사 일상

9. 지속적 안녕

Special_J_RN 2024. 2. 24. 02:44

어김없이
돌아다니는 할머니와

새벽에도
들락날락 화장실을 가는
아버님들

K-drama를 보며
한국말을 시도해 보는 흑인 동료들

이 일상을 어떻게 바라보느냐는
전적으로 나와 주님과의 관계에 달렸다.

저 사람은 넘어질 텐데
왜 자꾸 나오는 거야
이러다 또 사건보고서 쓸까 봐
신경 쓰이네

아니 화장실 아까 갔는데
왜 또 가는 거야
신경 쓰이네

쟤는 지 할 일 다 하고
드라마를 보는 건가?
저럴 시간에 환자 한 번 더 보겠네
신경 쓰이네

아무리 말해도
바뀌지 않는
근무환경에
나는 마음이 돌처럼
굳어져간다.

내 안에
가득한 불만과 증오는
일상의 소중함을 가리고
나아가 주님을 부정한다.

그리고 씨름한다.

내가 여기서
손을 놓으면
어쩔 건데요?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안 하면
그때 제 기도를 들어주실 건가요?

협박도 해본다.
나쁜 말도 해본다.
외면도 해본다.

그러다

내가 일하는 곳을
지옥이라 부르며
자기를 이곳에 가둔 가족들을
저주하는 어르신들을 마주했다.

이상하게
내 속이 아프고
많이
힘들었다.
꽤 긴 시간 동안.

나의 주님도
같은 마음이셨겠지.

이기려 하지 말고
그저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
그게 가장 쉬운 길이라는 걸.

지속적인 안녕은
결국
나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면
자연스럽게 오는 것임을
나는 분명 경험했다.

자꾸 나를 드높이고
성급하게 일을 처리하려 할 때
주님은 나에게
당신의 마음을
보여주신다.

일상이 잿빛으로 가려질 때마다
주님의 선하고 높으신 뜻을
알게 하시니
나는 참 복 받은 사람이다.

'미국간호사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11. 3월, 모든 일에 때가 있다.  (1) 2024.03.02
10. 53번 버스  (0) 2024.02.27
8. 김포공항 가는법  (3) 2024.02.12
7. F4 (낙상 4인방) - 2탄  (2) 2024.02.08
6. 바닥에 눕는 이유  (14) 2024.0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