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간호사 일상

10. 53번 버스

Special_J_RN 2024. 2. 27. 21:11

요즘 제일 즐겨보는 영상은
치매 환자/보호자에 관한 다큐멘터리.

내 인생에서
치매는 생뚱맞은 단어였고
한국에서 근무할 때에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내가 이렇게
이 미국땅에서
한인 치매 어르신들을
돌보게 될 줄이야.

"난 벽에 똥칠할 때까지 살 거야"
라는 말이
난 이제 너무 무섭다.

언제 한 번은
투약하러 방에 들어갔다가
어르신이 두 손으로 무언갈
만지작만지작 거리고 있더라.

가까이 다가가니
아.....
냄새로 먼저 충격.
그리고 손톱 사이에 낀 대변과
베개, 이불 그리고 어르신 볼에 묻어 있는
대변을 보고... 아..

어떤 어르신은
자꾸 방 밖으로 나와서
다른 병실 화장실,
다른 어르신들 침대 옆,
그리고 복도에 대놓고
대변을 누신다.

치매 어르신들이
드시는 저녁약엔
수면을 유발하는 성분이 있기에
걸어 나오시다가 넘어지는 경우도
다반사다.
엉엉...

얼마 전 일이다.
다른 방에 들어가시려는
아버님을 붙잡고
간호사실로 모셨다.
내 옆에 앉혔다.

그날따라
조용한 밤이었고
난 그분에 대해
호기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알아낸 건,
한국에서 나와 같은 동네에서 자라신 것,
소싯적에 잘 노셨다는 것,
(양 귓불에 구멍이 있었다)
내 고등학교를 아시는 것,
두 따님이 있는데 아버님 닮아 예쁘다는 것.

간호사실 앞 벽에
아주 크게
전체 환자 수(Census)를 써놨는데
그날은 53명이었다.

할아버지는 그 숫자가
본인이 타고 가야 할 버스넘버로 아시고
"53번 버스는 언제 와?"
"지금 몇 시야? 올 때 됐는데."
하며 복도 끝을 하염없이
바라보셨다.

"버스 타고 어디 가시게요?"
라고 물었더니

"집에 가야지. 자네도 나랑 같은 버스 타나?"
라고 답하셨다.

"아버님, 저건 버스 숫자가 아니에요.
그리고 여긴 병원이고 저는 간호사예요.
기억나시죠?"

"그럼, 난 다 알아. 나 바보 아니야.
근데 버스는 언제 와?"

이 흐름을  끊고자
내가 가져온 간식을 함께 나눠먹었다.
땅콩, 아몬드 그리고 초코파이.
냠냠. 아주 맛있게 잡수셨다.

갑자기 궁금해 여쭈었다.
"아버님은 교회 다니세요,
아님 성당 다니세요?"

아버님은
"난 절 다녀"

"전 교회 다녀요.
매주 여기서 교회분들이 오셔서
찬양도 하고 간식도 드리죠?
그때 꼭 가세요."

"그러지 뭐"
쿨하신 아버님.

새벽 4시에 시작된
우리 대화는
5시에 끝이 났다.
즐거웠다.

고요한 시간을
허락해 주신 주님께
감사한 밤이었다.

오늘 또
복도에서 대변을 누셨지만
아버님은 당당하시다.
"여기가 화장실이니까 했지!!!!!
날 바보로 아나?!!!"

옛 기억에 갇힌,
confuse 한,
치매 환자들에게
나는
전도하는 용기를
조금씩 내보고 있다.

아침 마지막 라운딩을 돌며
어르신들 귀에 대고 속삭여본다.

"주님이 어머님을
정말 정말 많이 사랑하신대요.
오늘 이 말 전해드리려 왔어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내일 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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