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일상 3

12. 마지막 눈맞춤

아버님, 그동안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아버님 만나서 행복했어요. 가족분들이 아버님 많이 사랑하신대요. 그리고 하나님이 울 아버님 최고로 많이 사랑하신대요. 천국에서 평안히 계시다가 우리 다시 만나요. 안녕히 가세요. 올해 들어 일곱 분과 작별 인사를 하였다. 저번 달에만 내 팀에서 세 분이 돌아가셨다. 그간 이렇게 글을 쓸 용기도 힘도 나지 않았던 거 보니 나는 괜찮지 않았던 거 같다. 그리고 오늘 새벽에 또 한 분을 보냈다. 산소통을 바꾸고 호흡기 치료를 해보고 내 지식선에서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던 거 같다. 하지만, 매 시간마다 혈압이 뚝뚝 떨어졌다. 새벽에 가족분들에게 알릴 땐 참 조심스럽다. 자다 깨어 급하고 슬픈 마음에 오시다가 차 사고는 나지 않을까. 나는 그저 기도한다. Confir..

10. 53번 버스

요즘 제일 즐겨보는 영상은 치매 환자/보호자에 관한 다큐멘터리. 내 인생에서 치매는 생뚱맞은 단어였고 한국에서 근무할 때에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내가 이렇게 이 미국땅에서 한인 치매 어르신들을 돌보게 될 줄이야. "난 벽에 똥칠할 때까지 살 거야" 라는 말이 난 이제 너무 무섭다. 언제 한 번은 투약하러 방에 들어갔다가 어르신이 두 손으로 무언갈 만지작만지작 거리고 있더라. 가까이 다가가니 아..... 냄새로 먼저 충격. 그리고 손톱 사이에 낀 대변과 베개, 이불 그리고 어르신 볼에 묻어 있는 대변을 보고... 아.. 어떤 어르신은 자꾸 방 밖으로 나와서 다른 병실 화장실, 다른 어르신들 침대 옆, 그리고 복도에 대놓고 대변을 누신다. 치매 어르신들이 드시는 저녁약엔 수면을 유발하는 성분이..

9. 지속적 안녕

어김없이 돌아다니는 할머니와 새벽에도 들락날락 화장실을 가는 아버님들 K-drama를 보며 한국말을 시도해 보는 흑인 동료들 이 일상을 어떻게 바라보느냐는 전적으로 나와 주님과의 관계에 달렸다. 저 사람은 넘어질 텐데 왜 자꾸 나오는 거야 이러다 또 사건보고서 쓸까 봐 신경 쓰이네 아니 화장실 아까 갔는데 왜 또 가는 거야 신경 쓰이네 쟤는 지 할 일 다 하고 드라마를 보는 건가? 저럴 시간에 환자 한 번 더 보겠네 신경 쓰이네 아무리 말해도 바뀌지 않는 근무환경에 나는 마음이 돌처럼 굳어져간다. 내 안에 가득한 불만과 증오는 일상의 소중함을 가리고 나아가 주님을 부정한다. 그리고 씨름한다. 내가 여기서 손을 놓으면 어쩔 건데요?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안 하면 그때 제 기도를 들어주실 건가요? 협박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