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13

12. 마지막 눈맞춤

아버님, 그동안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아버님 만나서 행복했어요. 가족분들이 아버님 많이 사랑하신대요. 그리고 하나님이 울 아버님 최고로 많이 사랑하신대요. 천국에서 평안히 계시다가 우리 다시 만나요. 안녕히 가세요. 올해 들어 일곱 분과 작별 인사를 하였다. 저번 달에만 내 팀에서 세 분이 돌아가셨다. 그간 이렇게 글을 쓸 용기도 힘도 나지 않았던 거 보니 나는 괜찮지 않았던 거 같다. 그리고 오늘 새벽에 또 한 분을 보냈다. 산소통을 바꾸고 호흡기 치료를 해보고 내 지식선에서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던 거 같다. 하지만, 매 시간마다 혈압이 뚝뚝 떨어졌다. 새벽에 가족분들에게 알릴 땐 참 조심스럽다. 자다 깨어 급하고 슬픈 마음에 오시다가 차 사고는 나지 않을까. 나는 그저 기도한다. Confir..

11. 3월, 모든 일에 때가 있다.

3월이 왔다. 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고 매주 기쁜 소식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 같다. 가장 좋아하는 성경이 뭐예요? 라고 질문을 받았을 때 자신 있게 답하는 사람을 부러워할 때가 있었다. 그런데 이제 시간이 흘러 나 또한 웃으며 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참 감사하다. 나는 늘 전도서 라고 대답한다. 그중에서도 3장. 1 There is a time for everything, and a season for every activity under the heavens: 2 a time to be born and a time to die, a time to plant and a time to uproot, 3 a time to kill and a time to heal, a time to tear do..

10. 53번 버스

요즘 제일 즐겨보는 영상은 치매 환자/보호자에 관한 다큐멘터리. 내 인생에서 치매는 생뚱맞은 단어였고 한국에서 근무할 때에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내가 이렇게 이 미국땅에서 한인 치매 어르신들을 돌보게 될 줄이야. "난 벽에 똥칠할 때까지 살 거야" 라는 말이 난 이제 너무 무섭다. 언제 한 번은 투약하러 방에 들어갔다가 어르신이 두 손으로 무언갈 만지작만지작 거리고 있더라. 가까이 다가가니 아..... 냄새로 먼저 충격. 그리고 손톱 사이에 낀 대변과 베개, 이불 그리고 어르신 볼에 묻어 있는 대변을 보고... 아.. 어떤 어르신은 자꾸 방 밖으로 나와서 다른 병실 화장실, 다른 어르신들 침대 옆, 그리고 복도에 대놓고 대변을 누신다. 치매 어르신들이 드시는 저녁약엔 수면을 유발하는 성분이..

9. 지속적 안녕

어김없이 돌아다니는 할머니와 새벽에도 들락날락 화장실을 가는 아버님들 K-drama를 보며 한국말을 시도해 보는 흑인 동료들 이 일상을 어떻게 바라보느냐는 전적으로 나와 주님과의 관계에 달렸다. 저 사람은 넘어질 텐데 왜 자꾸 나오는 거야 이러다 또 사건보고서 쓸까 봐 신경 쓰이네 아니 화장실 아까 갔는데 왜 또 가는 거야 신경 쓰이네 쟤는 지 할 일 다 하고 드라마를 보는 건가? 저럴 시간에 환자 한 번 더 보겠네 신경 쓰이네 아무리 말해도 바뀌지 않는 근무환경에 나는 마음이 돌처럼 굳어져간다. 내 안에 가득한 불만과 증오는 일상의 소중함을 가리고 나아가 주님을 부정한다. 그리고 씨름한다. 내가 여기서 손을 놓으면 어쩔 건데요?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안 하면 그때 제 기도를 들어주실 건가요? 협박도 ..

8. 김포공항 가는법

새벽 1시. 문을 여는 소리가 들리고 중얼중얼 혼잣말을 하며 나오신다. 멋쩍으신 듯 머리를 긁적이며 "아무도 없나?" "이 방은 왜 불이 꺼져있어?" "왜 죄다 문을 열고 자?" 그리고 다른 유닛으로 향한다. 나는 붙잡는다. "어머님, 지금 새벽이에요. 주무셔야죠." 보통은 "그래?" 하며 다시 들어가신다. 그리고 5분 뒤 똑같은 상황이 반복된다. 6-7번은 양반이다. 10번도 넘게 반복되기도 한다. 나는 그때마다 처음 일인 양 어머님을 대한다. 어느 날은 방에 나와서 따님을 찾으신다. "선희가 집에서 날 기다릴 텐데.. 걔가 집에서 동생이랑 둘이 있는데.. 내가 가서 밥 차려줘야 되는데.." 하면서 종종걸음을 하신다. 나는 대답한다. "어머님, 아까 따님 왔다 가셨어요. 지금 깜깜한 밤이라 집 가는 버..

7. F4 (낙상 4인방) - 2탄

환자가 낙상했을 때, 외상이나 출혈, 통증 그리고 사지 움직임에 제한이 없는지 확인해야 한다. 모두가 normal함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ER로 이송해야 하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환자가 anticoagulant 복용 중일 때다. 대표적으로 Eliquis, Xarelto and Coumadin(와파린)이 있다. 중풍이나 DVT, pacemaker를 갖고 있는 어르신들이 이러한 약을 복용한다. 이 약을 복용 중이면 흔히 지혈이 잘 안 된다. 막상 넘어진 직후엔 모르는데 몸 안에서, 특히 뇌 속에서 출혈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바로 transfer to ER! 우리 낙상 4인방 중 2번째 분은, 목소리도 우렁차고 뼈대도 굵은, 머리숱도 많으신 80대 할아버지시다. 손녀가 바이올린 신동이라 줄리아드 학교에 들어갔..

6. 바닥에 눕는 이유

우리 facility에서 내가 근무하는 이곳만 유일하게 Korean Specialty Unit이다. 가끔 staffing issue로 다른 유닛 근무자들이나 에이전시 널스들이 일하러 올 때가 있다. 그들이 이곳에서(한국인에게) 놀란 몇 가지를 풀어보려 한다. 1. Diabetes 우리 어르신들 70% 정도가 당뇨를 갖고 있다. Med cart를 열면 어르신들께 투여할 인슐린이 한가득이다. 미국인 동료들이 놀란다. 사실 나도 놀랐다. 쌀밥이 이렇게 안 좋은 건가..? 당뇨가 있는 bed-ridden 환자들은 예후가 정말 안 좋다. 욕창이 한 번 생기면 당뇨가 없는 분들보다 급속도로 악화된다. 특히나 낙상 후에 rehab 목적으로 오신 분들은 이미 DM foot이나 circulation 문제 가능성이 있어 ..

5. 커피 한 모금

어르신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보이는 몇 가지 증상들이 있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입에 빨대를 갖다 대면 물을 빨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무언가를 삼킬 때, 생각보다 많은 근육을 쓴다고 한다. 후두를 닫고 식도를 여는 그 과정이 단순한 게 아니란다. 작년 여름에 돌아가신 그 아버님은 주 3일 혈액투석을 받았던 분이셨다. 원래 성격이 불같고 staff들에게도 버럭버럭 화를 잘 내셨다고 한다. 식사메뉴에 꼭 베이컨이 있어야 했는데 빠트린 날에는 소리를 지르며 컴플레인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Covid-19로 병원에서 오래 치료를 받으신 후 다시 돌아오셨을 땐, 180도 바뀐 채로 매 처치마다 "고마워, Thank you"라고 말씀하시고 질문에 대답도 잘하셨다. 난 감사하게도? 변화된 이후에 만났다. Night..

4. 스미마셍

아침 7시 반, 인계를 마치고 퇴근을 한다. 운전이 미숙할뿐더러 미국의 단위체계(마일, 피트..ㅠㅠ)+네비게이션의 거리감각이 익숙지 않아 첫 6개월 정도는 남편이 항상 출퇴근을 함께 해줬다. 혼자 운전하기 시작하고 얼마 후에, 좌회전을 하다가 다른 차선을 침범한 적이 있는데 어찌나 빵빵대던지. 같이 달리다가 신호에 걸려 서로 창문을 내렸다. "Hey! you almost hit me!" 중년 백인 아저씨가 소리를 친다. 화가 많이 나셨다. 나는 두 손을 싹싹 빌며 "I'm so sorry, sir. sorry" 하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 아저씨가 오히려 당황해하며 "Ok...ay."하고 지나가셨다. 솔직히 두 손을 빈 건 overacting이었다. 돌아보니 진짜 바보 같았다. 살면서 처음 해보는 행..

3. F4 (낙상 4인방) - 1탄

가나에서 온 널스가 폰을 보며 깔깔 웃고 있다. "You look so happy, friend~" 하며 다가가니, "Hey, my dear, do you know "Boys over Flowers?". This is a Korean TV show." 그러면서 본인이 보는 영상을 보여줬는데. 아니 글쎄, 꽃보다 남자가 아닌가? 와.. 언제적 꽃보다 남자야............... 뒤에서 챠팅중이던 나이지리아 널스가 "I loooooove Park Seo Joon!!!!!!!" 하면서 김비서가 왜 그럴까를 봤냐며, 최근엔 경성크리처를 봤는데 펑펑 울었다며. 또 다른 K-drama를 쭉 얘기하며 추천을 해줬다. 와 자랑스러운 한국드라마! 그러던 중 내 팀에 가장 눈여겨봐야하는 네 사람이 떠 올랐다. 대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