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간호사 일상

1. 아빠와 아파

Special_J_RN 2024. 2. 1. 04:57

우리 유닛에는 50명이 넘는 한인 어르신들이 계신다. 그리고 널스 2명이 팀 하나씩 맡아서 근무를 하는데 나는 나이트 전체 근무자(RN, supervisor, GNA...) 중 유일한 한국인.

그 말은 즉슨,
미국인 근로자 혹은 어르신들의 요청이 있으면 통역도 해야 된다는 말이다.

다시 정리하자면,
나는 50여 명의 어르신 모두를 알아야 하고 (병력뿐만 아니라) 캐릭터를 파악해야 된다는 것이다. 지금의 컴플레인이 new인지, 치매증상인지 구분을 할 줄 알아야 한다.
무엇에 예민한지(투약시간, 말투, 기저귀 change time) 알아야 내 일을 하면서 그들을 도울 수 있다.

1호실에 계신 우리 예쁜 할머니.
방 안에 형제자매님들과 찍은 사진,
남편분과 찍은 사진과 꽃 병으로 가득한 병실.
찬송가가 무한 반복되는 언제나 따뜻한 공간.

그 할머니는 90세가 훌쩍 넘었고 치매가 있다.
현재는 근처에 거주하시는 여동생들이 보호자로 찾아오시는 상황.
나를 보면 언니라고 하시고 땡큐 하며 손뼉을 치신다. 너무 마르셔서 BP cuff 감는 것도 조심스럽다.
약도 잘 드신다. 물을 드리면 꿀꺽꿀꺽 잘 삼키시고. 너무나 나이스하다.

우리 GNA들은 95%가 흑인들이다.
아는 한국말이라곤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아파" "배고파"
이것이 다다....

의사소통이 안되는데 어떻게 일을 하나..
지금도 의문이다. 방치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래도 어르신들이 무언가를 말할 때,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GNA들은 내게 도와달라고 말을 한다.

예를 들어,
한 GNA가 나에게 노티를 한 적이 있다.
"Room 1, she looks sick, complaining of pain now. I think she needs Tylenols"라고.

정기적으로 들어가는 narcotic을 투약한 지 2시간도 안되어서 그런 노티를 받은 나는 의아하다.
방에 들어가 바이탈을 체크하고 assess를 해봐도 아픈 곳은 없다 하신다.
그저 "아빠, 아빠, 보고 싶어"라고 되풀이하실 뿐..

그렇다.
아빠와 아파.
그때 알았다. 두 말이 비슷하게 들리는구나.

울 예쁜 어머님, 아빠가 보고 싶으시구나.
내일 오시라고 할게요.
지금은 밤이라 주무신대요.
울 어머님도 주무세요. 또 올게요.

고마워,라고 대답하시고 잠이 든 어르신..

치매는 뭘까.
나랑 아주 먼, 상관없는 질환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할머니를 통해서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분에 대해서도.
지금 글을 쓰는 내가 오늘 밤, 일 가기 전,
가장 보고 싶은 사람들 중 한 명이 될 정도로.

그저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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