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간호사 일상

5. 커피 한 모금

Special_J_RN 2024. 2. 5. 12:00

어르신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보이는 몇 가지 증상들이 있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입에 빨대를 갖다 대면 물을 빨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무언가를 삼킬 때, 생각보다 많은 근육을 쓴다고 한다.
후두를 닫고 식도를 여는 그 과정이 단순한 게 아니란다.
 
작년 여름에 돌아가신 그 아버님은
주 3일 혈액투석을 받았던 분이셨다.
 
원래 성격이 불같고
staff들에게도 버럭버럭 화를 잘 내셨다고 한다.
식사메뉴에 꼭 베이컨이 있어야 했는데
빠트린 날에는 소리를 지르며 컴플레인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Covid-19로 병원에서 오래 치료를 받으신 후
다시 돌아오셨을 땐, 
180도 바뀐 채로 매 처치마다 "고마워, Thank you"라고 말씀하시고
질문에 대답도 잘하셨다.
난 감사하게도? 변화된 이후에 만났다.
 
Night routine 중에 하나가 투석환자들을 새벽에 준비시키고 보내는 일이다.
 
Vital check 및 투석 전 약물을 투여하고
이른 아침을 드리고,
말끔하게 clean 한 뒤에,
Geri-chair(바퀴가 달린 안마의자 st)에 앉히고 담요를 덮는다. 
출근한 투석실 transporter에게 인계를 주면 된다. 
참 쉽죠?
 
이 할아버지는 꼭 식사하실 때마다 여기저기 흘리면서 드셔서
옷을 다시 갈아입히곤 했었다.
점점 declining이 될수록 식판을 엎는 횟수도 늘어났다. 
그리고 마지막 몇 주는 투석을 거절하셨다.
 
투석환자가 투석을 안 한다?
몸에 칼륨이 쌓여 심장마비로 언제 돌아가실지 모른다.
 
거절할 때마다 나는 아침 7시에 맞춰 보호자에게 전화를 하곤 했다.
"아버님이 오늘 투석을 거절하셨어요. 컨디션이 안 좋으시대요."
 
처음 몇 번은 많이 걱정하던 보호자분들도
시간이 지나니 아버지가 해달라는 대로 맞춰달라고 부탁하셨다.
 
내가 제일 마주하고 싶지 않은 상황이 있다.
마지막 아침 라운딩 때 싸늘하게 죽어있는 어르신을 보는 것이다.
나는 이 분이 언제 돌아가실지 몰라 불안했다. 
 
어느 날 밤에 혈압을 재러 들어갔는데
아버님 입술이 굉장히 건조했다. 
"물 좀 드릴까요?"
 
"아니.. 나 커피 한 잔 부탁해도 될까?" 힘겹게 말씀하셨다.
 
응? 이 밤에?
 
"아버님, 요 며칠 투석을 안 하셔서 혈압도 높고, 커피는 안 돼요. 죄송해요."
라고 나왔다.
인간적으로는 마음이 안 좋았지만 간호사로서는 잘 대처했다고 생각했다.
 
이틀 뒤,
Day 널스에게 식사도 거의 못하시고 말수도 줄어들었다는 인계를 받았다.
무거운 마음으로 방에 들어갔다.
아버님이 나를 보시더니 또 커피를 부탁하셨다.
 
그날은 도저히 안 되겠더라.
따뜻한 디카페인 커피를 드렸다.
"아버님, 딱 한 모금이에요. 더 안 돼요. 뜨거우니까 조심하세요."
 
힘겹게 드시더니 웃으신다.
 
그리고 일주일 뒤였을까.
"아버님, 저 왔어요. 오늘은 좀 어떠세요?"
눈을 감은 채, 말씀이 없으시다.
Vital check을 했을 때
모니터에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다.
반복해 본다. 아무런 숫자도 뜨지 않는다.
 
사망시간 20:35. 
 
이마에 손을 대고 기도했다.
주님 곁에서는 건강하게 산책도 하시고 여행도 다니시고 평안하시길.
 
손을 잡고 기도했다.
천국에서 꼭 다시 만나자고. 
 
이 분이 나의 첫 expire 환자다.
보호자에게 사망을 알린 것도 처음이었고
장례식 직원과 연락한 것도 처음, 
의사에게 그리고 모든 기록에 expire를 챠팅 한 것도 처음이었다.
 
세 명의 따님들이 소식을 듣고 오셨다.
아버님의 얼굴을 조금씩 다 갖고 계셨다.
이미 투석을 거절하실 때부터 마음의 준비를 하셨다 한다.
어떻게 위로를 해드려야 할까. 이 분들도 다 우리 엄마뻘이다.
그저 떨리는 목소리로 아버님과 생전에 나누었던 대화, 일화를 말씀드렸다.
 
"선생님이 우리 아빠 마지막을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이 세상에 당연한 게 있을까.
숨을 쉬고 물을 마실 수 있다는 게
누군가에겐 기도제목일 수 있다.